▶사-샤   ▶서-셔   ▶소-쇼   ▶수-슈   ▶스-시


▣  사구(沙丘)

건조한 모래가 있는 지역에서 적당히 강한 바람이 일정방향으로 부는 곳에 형성되기 쉬우며 건조지나 해안 ·하안 등지에 발달한다.

【종류】 형성장소에 따라서 내륙사구(內陸砂丘) ·해안사구(海岸砂丘) ·호반사구(湖畔砂丘) ·하반사구(河畔砂丘)로, 생성시대의 신구(新舊)에 따라 고사구(古砂丘)와 신사구(新砂丘), 이동의 유무에 따라 고정사구(固定砂丘)와 이동사구(移動砂丘)로 나누어진다. 내륙사구는 대륙 내부의 열대 및 중위도사막에 분포하며 북아메리카사막 면적의 2 %, 사하라사막의 11 %, 아라비아사막의 30 %가 이에 해당한다. 해안사구는 습윤온대의 각지에 분포하며 바다물결로 해안에 쏠려온 모래가 탁월풍에 의하여 운반되어 형성된다. 고위도의 빙설(氷雪)로 뒤덮여 있는 해안이나 열대 밀림으로 뒤덮여 있는 해안에는 발달하지 않으며, 프랑스의 해안이나 발트해(海) 연안, 북아메리카 동안에 발달한다. 호반사구는 미시간호(湖)의 동안, 슈피리어호나 이리호의 남안, 카스피해 및 아랄해 동안에 잘 발달되어 있다. 하반사구는 각지에서 볼 수 있으며 미시시피강(江), 미주리강, 리오그란데강 등에 전형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사막 주변에 있는 내륙사구나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해안사구에서는 식물이 자라서 사구는 이동하지 않는데 이것이 고정사구이다. 모래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사구가 이동사구이며 내륙사구와 해안사구에 그 예가 많다. 이동속도는 풍속(風速)과 사구의 높이에 따라 다르며 작은 사구일수록 이동속도가 크다. 미시간호 남안에서는 일찍이 사구로 매몰된 삼림이 이동에 의해서 또 다시 지표에 나타난 일이 있으며, 내륙 아시아에서는 수백∼수천 km2에 걸쳐 도시나 마을이 매몰된 예도 있다.

【형태】 사구의 모양은 모래의 공급량이나 풍속 ·풍향과 그 변화, 주변 지형 등에 의해서 고립된 단순하고 작은 사구로부터 말발굽형 ·열상(列狀) ·파랑상(波浪狀) 등 변화가 다양하다. 모래의 공급량이 적으면 타원형의 순상사구(楯狀砂丘)가 생기고 바람받이[風上]는 완경사, 바람의지[風下]는 급경사, 양쪽 끝은 돌출하여 바르한(Barkhan)이 된다. 이것이 이동해서 옆으로 이어지면 풍향에 대해서 직각으로 배열되는 횡사구(橫砂丘)가 형성된다. 풍속이 크면 바람의지 쪽으로 열려진 V자형이나 포물선형(抛物線形) 사구가 형성되고 이것이 이어지면 풍향과 평행하는 종사구(縱砂丘)가 형성된다. 풍향이 계절적으로 변화하는 곳에서는 바르한이 변화된 각뿔상사구[角錐狀砂丘]가 된다. 대규모의 바르한의 바람의지 쪽에는 바람받이 쪽에 급경사, 바람의지 쪽에 완경사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만하사구(mankha)가 형성된다.

 사구 이동(황해도 장산곶 부근)

  길바닷가는 모두 모래밭이다.  그 모래는 모두 곱고 금색을 띠어 해에 빛이 반짝이며 20리나 계속돈다.  바람이 불면 봉우리를 이루어 높아지고 허물어져 조석(朝夕)으로 옮겨져, 혹은 동쪽에 언덕이 생기고 혹은 서쪽에 언덕이 생겨서 좌우로 갑자기 이동함이 일정치 않다.  그러나 모래 위의 탑묘는 장려하고, 그리고 마침내 파묻히고 눌리지도 않으니 이는 시롤 괴이한 일이다.  혹 말하기를 바다에서 용이 그리한다고 그러기도 한다.  (출처 : 택리지 팔도총론 황해도편)

 ▣ 사군(四郡)과 육진(六鎭)

  조선 전기 북서 방변의 여진(女眞)을 경략하기 위해 압록강 상류에 두엇던 여연(閭延)·자성(慈城)·무창(茂昌)·우예(虞芮) 등 사군과 조선 세종 때 동북 방면 여진족(女眞族) 침이벵 대비하여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한 종성(鍾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의  육진은 방어 취락으로서 발달하였다.

사빈(沙濱, sandy beach)

사빈이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해빈(beach)로서 해안선을 따라 파랑과 연연류가 모래를 쌓아올려 만든 지형이다. 주로 유입하천(流入河川)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되거나, 해식애(海蝕崖)와 인접 해안의 침식으로 생긴 사력(砂礫) 등이 연안의 파랑이나 바닷물의 흐름에 의해 운반 ·퇴적되어 생성된다. 폭풍시에 거파에 의한 강력한 스워시(swash)가 모래를 육지쪽으로 밀어올려 버엄(berm)을 형성하기도 한다. 온대지방에는 주로 석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장석과 함께 소량의 중광물(重鑛物)도 나타난다. 반면, 열대지방에는 산호파편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생물의 골격물 등으로 이루어진 석회질 모래가 많이 쌓인다. 사빈에 퇴적된 모래는 깨끗해서 해수욕장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금 ·티탄 ·게르마늄 등과 같은 귀중한 금속이 농집되어 있기도 하다.

사주(沙柱, sand bar)

파랑과 연안류에 의해 해안선을 따라 운반되는 퇴적물질이 만의 입구쪽을 향하여 쌓임으로서 좁고 긴 사취(sand spit)를 형성하고, 사취가 길게 성장하여 만의 입구를 완전히 가로 막으면 만구 사주(bay mouth bar)가 형성되고 그 뒤에는 석호(lagoon)가 생긴다.  

사취 (砂嘴)

일반적으로 만의 입구에 생긴다. 연안류가 운반한 모래가 만구에서 차례로 퇴적하여 해면상에 나타나서 사취가 된다. 사취의 끝은 보통 내만 쪽으로 만곡하는데, 이런 것을 구상사취라고 한다. 오래 된 사취가 파도나 연안류로 깎이거나 연안류의 방향이 바뀌면, 사취의 끝이 안쪽으로 작게 갈라져서 분기사취가 된다. 또, 사취가 뻗어나가 만구를 막고 그 안쪽에 석호를 가지게 되면 사주라고 한다.

사하촌(寺下村)

- 원래 절에 예속되어 절의 경지를 경작하던 곳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절을 찾는 참배객 및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관광촌으로 변모하였다.

사회적 휴경(休耕)

  노동력 부족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충분히 이용 가능한 땅을 경작하지 못하고 놀리게 되는 현상

 ▣ 산경표(山徑表)

  '산경표(山徑表)'는 산줄기를 나타낸 표를 뜻한다. 1769년에 여암 신경준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1,650개의 지명을 한 사람이 다 짓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이 많은 산과 고개를 다 돌아보지 않았을 터이니, 이 '산경표'의 지은이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산경표'에는 산줄기를 표현할 때, 산맥이란 말 대신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 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있다. 우리 나라는 오랜 침식을 받았으므로 지질 구조선은 땅 속의 보이지 않는 관념적 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지질 구조선은 실제 지형과 별로 관계없는 경우가 많다. 지질 구조선에 따른 산맥도가 아니라 실제 지형에 따른 산경도가 실제 생활에 더 잘 들어맞는 것이다. 산줄기인 대간, 정간, 정맥은 하천을 고려하여 설정하였다. 여기에는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라는 동양 철학의 기본인 음양 오행설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대간, 정간, 정맥으로 둘러싸인 지방의 모든 물은 반드시 한 하천으로 모인다. 같은 물을 마시는 유역의 주민은 문화가 동일하며,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한다.  또한, 같은 호남 지방이지만, 호남 정맥을 경계로 서쪽은 서편제, 동쪽은 동편제로 소리가 다르다. 해서 정맥 북쪽은 황석어젓을, 그 밑에서 금북정맥까지 중부 지방은 새우젓을, 그 밑의 남부 지방은 멸치젓을 담가 먹었다. 산경도를 보면서 영남 지역에서 산을 가장 적게 넘어 서울로 가는 길을 찾아보면 단한 번 산을 넘어가는 길이 나오며, 그 곳이 바로 문경 새재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산경표에 따른 지역 분류는 실제 등산이나 여행에 도움을 줄 뿐만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사, 문화 등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산경표를 알고 나면 지리 인식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인식이 달라진다. 18세기에 산경표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실제의 지형에 따라 산줄기 체계를 인식하고 생활해 왔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 조상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생활권까지도 일치한다, 우리 나라 실제 기후와 농업, 인구, 도시의 분포, 그리고 문화의 지역차는 현 교과서의 산맥도보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산경도로 더 설명하기 쉼다. 왜냐 하면, 일제가 우리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만든 지질학적 구조선에 따른 산줄기 체계는 오랜 침식을 받은 우리 나라의 지형에는 온전히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일제가 우리 나라를 지배하지 않았다면 태백산맥 대한 인식이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일제에 의해 그런 말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고 통일되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쪽 강원도에만 있는 태백산맥이 우리 한반도 등줄기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는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문학사에 길이 남을 '태백산맥'이란 소설 이름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의 상처가 담겨 있는 셈이다. '태백산맥'이란 제목 대신 '백두대간'이란 제목의 소설이 우리의 의식과 실제 생활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우리 한겨레의 오랜 역사와 삶이 단절되지 않고 다시 살아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데 역동적인 힘을 주지 않을까 싶다.  <교실밖 지리 여행중에서>

 ▣ 산경표(山經表)에 나타나 있는 우리 나라 지형

  한국의 산맥(山脈)을 나타낸 도표로 산줄기를 나타내는 표라는 뜻이다.  필사본. 1책. 18.3×28.7 cm.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친 대간(大諫)과 지맥(地脈)의 산맥 분포를 기재한 것으로 조선 영조 대의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하였다.  산맥 대신에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표현했고 1대간, 2정간, 13정맥을 두었다.  

 ▣ 산곡풍(山谷風:mountain and valley winds)

  산바람〔山風〕과 골바람 〔谷風〕을 말한다.  낮에 평지 쪽에서 산간부(山間部)의 골짜기로 부는 바람을 골바람이라고 하며, 밤에 골짜기에서 평지 쪽으로 부는 바람을 산바람이라 한는데, 이 두 바람이 낮과 밤에 규칙적으로 교체되는 풍계(風系)를 가리킨다.  산곡풍은 골바람의 공기량이 평지 위의 공기량에 비해 용량이 적고 데워지기 쉬우며, 냉각되기 쉽기 때문에 평지 위의 공기와 기압차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부는 규모가 작은 바람의 순환계(循環系)이다.

 ▣ 산맥(山脈)

1. 태백 산맥(적서롤 희게 보이는데서 유래) - 영서와 영동의 분수령으로 대관령, 철령, 추가령, 진부령, 한계령 등의 고객가 있다.

2. 함경 산맥  -  우리 나라 최대의 단층성 산지로 유역 변경식 발전이 활발하다.

 ▣ 산촌(散村:Strendoef)

  가옥이 띄엄띄엄 떨어져 이루어진 촌락으로 집촌(集村)에 대응하는 것으로 분산취락(分散聚落)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취락 형태는 주로 집촌 형태이지만 강원도의 산간 지방. 서해안의 간척지, 개마고원(蓋馬高原)의 화전 경작 지대에는 산촌이 발달되어 있다. 산촌이 형성되는 원인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지형·수리(水利)상의 이점, 농경지의 경영 방식이나 민족성 등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도 조방적(粗放的)인 방법에 따라 토지를 이용하는 지역이나 새로운 개척지 등에서 산촌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경영 시멘트 탱크에 의한 빗물 저자잉 가능해지면서 산촌이 이루어진 것은 좋은 예이다.

 ▣ 산촌(태안 반도)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을 받아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후 조선 초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은거, 피난 생활로 흩어져 살게 되어 개척의 역사가 짧다.  주로 100∼300m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큰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지하수가 풍부하고 지하수면도 낮아 음료수로 인한 취락 입지의 제한은 없는 곳이다.

산촌(散村)

집촌과는 달리 가옥이 분산되어 있는 형태의 촌락으로서 대개 구릉지나 산악지와 같이 경지가 불연속적이고 산재한 지역, 신 개간지, 인구가 희별하고 개별 경영이 행하여지는 지역 등에서 나타난다. 개마 고원이나 태백 산지 및 소백 산지 등에는 산지 농업이나 채취업에 의존하는 산촌이 발달하였으며, 태안 반도 일대의 신 개간지, 제주도의 과수원 지대, 서해안의 간척 지역 등에서 나타나는 촌락의 형태이다.

삼각강(三角江)

강의 하구가 나팔처럼 벌어진 강을 삼각강이라 한다.이러한 현상은 후빙기 해면 상승 때 하곡이 내륙 깊숙이까지 익곡되고 퇴적물이 충분히 메워지지 못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조차가 커서 하천의 토사가 대부분 조류에 의하여 바다로 제거되는 경우 하천은 삼각주 대신 간석지를 형성하면서 삼각강의 상태를 유지한다. 우리 나라는 황해로 유입되는 청천강, 대동강, 한강, 만경강 등의 대하천의 하구에서 삼각강의 특색이 나타난다.

삼각주(三角洲)

하천이 바다나 호소로 흘러 들어갈 때 유속의 급격한 감퇴로 인한혀 하구를 중심으로 토사를 집중적으로 쌓음으로서 형성되는 하천 퇴적 지형을 삼각주라고 한다. 단일 유로를 유지하던 하천은 삼각주에 이르러 여러개의 분류로 갈라져 망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분류의 양안에는 자연 제방이 모식적으로 발달하며, 자연 제방 뒤에는 배후 습지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는 우리 나라의 낙동강 삼각주와 나일강의 삼각주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황해안은 조차가 커서 하천의 토사가 대부분 조류에 의하여 바다로 제거되어 삼각주가 발달하지 못하고 간석지가 발달하며, 동해안은 조차가 작은 대신 파랑과 연안류의 작용이 활발하고 수심이 깊어서 사빈, 사주, 사취등을 형성한다.

- 하천이 호소(湖沼)나 해양으로 유입하는 하구(河口)에 하천을 따라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충적평야(沖積平野). 하천의 유속(流速)이 큰 상류 ·중류에서는 토사가 쉽게 운반되어 하구에 다다를 수 있으나 하구에서는 유속이 거의 없어질 뿐만 아니라, 특히 바다로 유입하는 하구에서는 바닷물의 염분이 운반되어 온 미세한 물질을 응결시켜 침전을 촉진하므로 하구에 토사가 퇴적된다. 이와 같이 하구에서는 바다 표면에 거의 잠길 정도의 평탄한 퇴적지형이 형성되어 육지가 이루어진다. 삼각주의 평면형(平面形)은 운반물질의 양, 파도의 침식작용, 해저지형(海底地形) 등에 의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삼각주는 그리스문자 Δ(delta)의 모양과 비슷하므로 삼각주를 델타라고도 한다. 삼각주의 평면적 모양에 따라 원호상 삼각주(圓弧狀三角洲) ·첨각상 삼각주(尖角狀三角洲) ·조족상 삼각주(鳥足狀三角洲) ·만입상 삼각주(灣入狀三角洲)로 나눈다. 원호상 삼각주는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가 모식적(模式的) 델타로서 카이로를 정점으로 하여 지중해 연안에 원호상의 해안선을 이루고, 포트사이드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해안에 여러 가닥의 지류가 망류(網流)를 이루면서 유입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전남 해남군(海南郡)의 독천 선상지(犢川扇狀地)가 선상지 삼각주를 이루면서 하구에 소규모의 원호 삼각주를 나타낸다. 첨각상 삼각주는 이탈리아의 로마 부근을 흐르는 테베레강(江) 삼각주가 전형적인데, 연안류(沿岸流)에 의하여 양쪽이 뿔 모양으로 깎이고 하구 부분의 퇴적이 우월하므로 이와 같은 모양의 삼각주가 형성된다. 함남 정평군(定平郡)의 광포강(廣浦江)과 함주군(咸州郡)의 성천강(城川江) 하구에 이와 비슷한 모양의 삼각주가 나타난다. 조족상 삼각주는 미시시피강(江)의 삼각주가 전형적인 것이며, 마치 조류(鳥類)의 발바닥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나온 이름인데 조지상 삼각주(鳥趾狀三角洲)라고도 한다. 정평군에 형성된 석호(潟湖)인 광포(廣浦)로 유입하는 주이천(朱伊川) 하구에 소규모지만 이와 같은 조족상 삼각주가 나타난다. 만입상 삼각주는 낙동강 하류의 김해평야(金海平野)가 그 대표적인 유형인데, 하구가 만(灣) 안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퇴적된 토사가 바닷물에 의하여 유출되지 않고 그대로 쌓이면서 이루어진 형태이다.

삼국 시대의 도시

- 장안 : 평양, 외성내에 정연한 가로망 (21만의 인구)

- 사비 : 부여, 백제 문화의 정수 (15만의 인구)

- 금성 : 경주, 바둑판식 가로망 (18만)

 ▣ 삼각주(三角洲:delta)

  하천이 호소(湖沼)나 해양으로 유입하는 하구(河口)에 하천을 따라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충적평야(沖積平野)로 하천의 유속(流速)이 큰 상류·중류에서는 토사가 쉽게 운반되어 하구에 다다를 수 있으나 하구에서는 유속이 거의 없어질 뿐만 아니라, 특히 바다로 유입하는 하구에서는 바닷물의 염분이 운반되어 온 미세한 물질을 응결시켜 침전을 촉진하므로 하구에 토사가 퇴적된다.  이와 같이 하구에서는 바다 표면에 거의  잠길 정도의 평탄한 퇴적지형이 형성되어 육지가 이루어진다.  삼각주는 그리스 문자 (delta)의 모양과 비슷하므로 삼각주를 델타라고도 한다.  형성 영력으로 운반 물질의 퇴적작용, 유속 감퇴와 파랑의 작용, 지반의 융기 작용, 연안류의 방향등이 있으며 토사 운반량이 많은 곳, 조차가 적은 곳 수심이 얕은 곳, 하상이 융기하는 곳에 잘 형성된다.

 ▣ 삼경(三京)

  고려 시대의 중요한 3도시로 지금의 서울에 남경(南京)을 두기 전(前)의 중경(中京:개성)·서경(西京:평양)·동경(東京:경주)이다. 서울에 남경을 둔 뒤 국왕이 순행하던 삼행은 중경·서경·남경으로 모두 풍수 지리적인 길지이며, 중경을 제외한 지방 행정 구획으로는 서경·동경·남경 등으로 구분된다. 3경의 설치 목적은 그 곳의 지방 세력들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과 국토 공간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삼림 파괴와 건조 지역의 확대

·삼림 파괴의 영향: 아마존 강과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이 파괴되어 지구에 산소가 부족해지고, 온실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

·건조 지역으로의 농경지 확대 : 토양 유실, 염분의 증가, 사막화 초래

  ▣ 삼소(三蘇)

  고려 시대 명당지(明堂地) 세 곳에 지은 궁궐로 좌소(左蘇)·우소(右蘇)·북소(北蘇) 등을 말한다. 왕도(王都)의 지덕(地德)을 보충하고 국운(國運)을 연장하기 위해 지었으며 왕이 때때로 머물던 곳이다. 1174년(명종 4) 왕명으로 삼소를 택하여 궁궐을 짓게 하였다. 좌소는 장단(長湍)의 백악산(白岳山), 우소는 풍덕(豊德)의 백마산(白馬山), 북소는 신계(新溪)의 기달산(箕達山)이다. 고려 시대 전체를 통하여 풍수지리설이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삼경(三京)의 설치와 자주 천도(遷都)를 하려 했던 것도 모두 풍수지리설 때문이었으며, 개경(開京) 근처에 삼소를 설치해야 된다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 였다. 고려 중기 이후 국가의 힘이 쇠약해지자 송도기쇠설(松都氣衰說)이 유행하여 천도론(遷都論)이 일어나 개경 주위의 명당 자리를 골라 궁궐을 지었다. 고려는 송도를 중경(中京), 평양을 서경(西京), 한양을 남경(南京), 경주를 동경(東京)이라 하였으며, 삼소의 위치도 시대의 해석에 따라 가끔 바뀌었다. 때로는 좌소가 한양(漢陽)이 된 일도 있고 아사달(阿斯達)에 견준 일도 있다. 북소는 평양이 되기도 하고, 우소는 금강산(金剛山)이나 충주(忠州)가 되기도 하였다. 왕이 이 궁에 머물 때는 그 곳을 신경(新京)이라 하였다.  

 ▣ 삼한사온(三寒四溫)

  한국을 포함한 중국 북부 지방에서의 겨울철 날씨의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3일간 춥고 4일간 따뜻한 날씨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의 겨울철 날씨를 지배하는 기단(氣團)은 대륙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으며, 대륙 고기압의 확장과 소산 내지 분리된 이동성 고기압이 통과하는 주기가 7일간이라는 뜻인데, 실제 이러한 주기적 변화를 하는 경우가 흔히 있으나 기압계의 동태에 따라서 주기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 삼한사온 (三寒四溫) :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부·북부 아시아에 나타나는 겨울 기온의 변화 현상이다.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북서 계절풍이 불어오는 데 이때 한파의 주기가 7∼10일 정도이다. 대체로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할 때 3한이, 약해질 때 4온이 나타난다고는 하나 반드시 7일을 주기로 변하는 것은 아니며,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기후의 일반적인 현상을 말하므로 실제로는 3한 6온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3한 4온 현상의 원인이 되는 시베리아 고기압은 겨울 한파 작용의 중심으로 복사 냉각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 남쪽은 티벳 고원이, 서쪽은 우랄 산맥이 있어 시베리아 고기압의 유로를 막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고기압은 동북 아시아쪽으로 유출되는 난쟁이 고기압으로 높이가 3㎞ 정도이므로 상층 대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즉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력하게 동북 아시아쪽으로 유출됨과 동시에 상층 대기의 3파(波)의 ridge(稜)에 놓이게 되면 겨울 한파가 몰아 닥치고 3한은 계속 연장된다. 즉, 3한 4온은 상층 대기의 영향을 받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강·약에 의해 나타나는 기후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삼한 사온은 법칙이 아니지만 겨울을 지내는 동안 매우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 주며 조사에 의하면 4한 5온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상권의 변화(강경)

  강경은 금강 수운의 요지였고 조선 후기 대구·평양과 함께 3대 시장의 하나였다. 그러나 호남선, 군산선, 장항선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상권이 철도 교통의 요지로 넘어감에 따라 현재는 자체 상권만을 유지할 정도로 축소되었다.

 ▣ 새만금 지구(종합 개발 사업)

  전북 부안, 김제, 군산 지역에서는 앞으로 황해안 중남부권 개발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대규모 새만금 지구 간척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04년 완공을 목표로 금강 하구의 군산 앞 바다에서 고군산 군도와 변산 반도를 잇는 33㎞의 둑을 쌓아 약 4만 2천㏊의 간척지를 만드는 이 사업은 용수 확보와 경지 확장은 물론, 공업 단지, 관광 위락 단지 등도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이 곳은 중국과 가장 인접해 있고, 동남 아시아, 중동, 유럽 국가들과도 연결될 수 있어 해상 운송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 해상 운송의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국제 무역항 건설의 최적지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의 수해 상습지를 항구적으로 배수 개선하고, 농업, 공업, 생활 용수를 확보하게 되어, 7천㏊의 공장 부지와 9천㏊의 농토를 조성할 뿐만 아니라 산업, 주거, 취락 공간을 위한 토지도 확보하게 된다. 그 결과 약 19만 톤의 식량 증산을 가져올 것이며, 금강 하구둑과 연결하는 황해안 교통망을 구축하여 이 지역의 개발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변산 반도에서 고군산군도  비응도를 잇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조성되므로 변산 반도 국립 공원까지 연결시키는 관광지로 개발하면 이 일대는 내륙과 해안, 내수면, 산업지 등 모든 조건을 갖춘 관광 명소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되는 1억2000여만평의 간척지를 만드는 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을 농림부안대로 시행할 경우 새만금호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고 새만금호는 제2의 시화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환경부는 이에 따라 농림부 등에 추가대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막대한 돈을 추가로 쏟아붓고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등 시행에 문제가 많아 새만금호 사업은 또 다시 난관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태다.

 ※ 새만금호 사업

 전북 군산과 부안을 세계 최대의 방조제(33㎞)로 연결, 대규모 간척지를 확보한다는 새만금사업은 91년 노태우(盧泰愚)정부 시절 국책사업으로 착공됐다. 농림부는 2조원 이상의 사업비를 투입, 2003년까지 물막이 공사를 끝내고 2011년부터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화호가 문제가 된 뒤 98년부터 수질문제가 부각되면서 환경단체들이 사업 백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도 “수질대책을 마련한 뒤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현재 환경부가 농림부 등이 내놓은 수질대책안을 검증하고 있다.  

 ※ 환경부의 딜레마

 환경부는 기본적으로 시화호나 새만금호 등 대규모 간척사업의 태동배경부터 문제가 많다는 입장. 지도를 바꾸는 대규모 국책사업이 환경에 대한 기초조사도 없이 정치권에서 대선을 앞두고 한탕주의로 진행돼서는 곤란하다는 것. ‘죽음의 호수’가 돼버린 시화호가 즉흥적으로 진행된 간척사업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농림부안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으로 검증한 결과 새만금호 상류에 축산밀도가 높아 농림부안대로 시행하다가는 새만금호의 부영양화가 계속돼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다는 것.그러나 이미 8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어민들에 대한 보상을 끝내고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57% 완료된 새만금호사업을 백지화하기는 어렵다는데 환경부의 고민이 있다. 결국 환경부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새만금호 유역주변의 농민들이 사용하는 비료사용량을 강제로 30% 이상 줄이고 △간척지에 공업단지나 도시용지 사용을 불허하고 △국고의 추가적 지원 등이 시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강력한 보완책을 권고할 방침. 문제는 환경부 스스로 ‘보완책이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

 ※ 농림부와 환경단체입장

 농림부와 전북도 농어촌진흥공사는 환경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30%인 우리나라가 간척을 통해 농경지를 늘려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환경부도 잘 알고 있는데 ‘시화호 쇼크’ 때문에 새만금호사업에 비협조적이라는 것. 농림부는 새만금호는 시화호에 비해 유입수량이 3.8배나 많고 유입된 물이 담수호에 머무는 날이 시화호의 절반에 불과해 별 다른 어려움없이 수질관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업단지 조성문제를 놓고는 농림부와 전북도가 상반된  입장. 농림부는 환경부안을 수긍하고 있지만 전북도는 “새만금호사업을 통해 전북도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주민들이 갖고 있는 만큼 공단조성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이미 8000억원을 투입했더라도 사업시행 후 겪을 폐해를 생각한다면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이 낫다”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