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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풍향에 관한 명칭

1.  이익의 성호사설 중 팔방풍(八方風)에 대한 기록

    동풍 → 사(沙)        남동풍 → 긴마(緊麻)

    서풍 → 한의(寒意)    남서풍 → 완한의(緩寒意)또는 완마(緩麻)

    남풍 → 마(麻)        북서풍 → 긴한의(緊寒意)

    북풍 → 고(高)   혹은 후(後)  북동풍 → 고사(高沙   )

2.  전통적인 팔쾌에 의한 방위 명칭

    동 → 진(震)          남동 → 손(巽)      서 → 태(兌)          남서 → 곤(坤)

    남 → 리(離)          북서 → 건(乾)      북 → 감(坎)          북동 → 간(艮)

 ▣ 방곡령(防穀令)

  조선 고종 때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곡물의 수출을 금지한 명령을 말한다.  1876년 강화도(江華島)조약으로 일본에 개국한 이래 일본 상인들은 우리 농촌에 침투하여 갖은 방법으로 쌀·콩 등을 매점해서 이를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통제를 받지 않고 곡물이 계속 반출되자 곡물의 절대 비축량이 부족하여 식량난을 가중시켰고, 88년(고종 25)에는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가 없게 되자 전국 여러 곳에서 연달아 폭풍이 일어났다.  이에 곡물 수출항인 원산(遠山)을 관장하던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은 89년 9월 한일통상장정(韓日通商章程) 제 37관(款)을 근거로 원산항을 통하여 해외로 반출되는 콩의 유출을 금지하는 방곡령을 발포하였다.  그러나 담당 관원의 실수로 예고기간이 부족하여 일본 무역상들이 타격을 입게 되자 한·일간에 분규가 일어나게 되었다.  정부는 일본의 항의로 조병식에게 방곡령 해제를 명하였으나, 조병식은 오히려 일본 상인들로부터 곡물을 압수하는 등 방곡령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다시 일본이 조병식의 처벌과 손해 배상을 요구하자 조병식을 강원도 관찰사로 전출시켜 방곡령을 해제하였다.  그러나 새로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한 한 장석(韓章錫)도, 90년 곡물 수출의 폐해를 들어 이를 금지하도록 건의하자 원산항의 방곡령을 다시 시행하였고, 이어서 황해도에도 방곡령을 내렸다.  이에 일본은 91년 11월 방곡령으로 일본 상인이 입은 손해 배상이라 해서 14만 7168환을 요구하며 양국간에 조정을 시도하였으나 해결되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이 93년 다시 배상금에 이자를 합산해 17만 5000환의 지불을 강요하자 정부는 청나라의 권고에 따라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배상금 11만 환을 지불하기로 하고, 93년 4월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방곡령은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시행되다가 94년 1월에 전면 해제되었다.

방조제(防潮堤)

조수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바다에 쌓은 제방으로서 염해를 방지하고,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된 시설물이다

배사구조(背斜構造)

습곡작용을 받은 지층의 산봉우리처럼 볼록하게 올라간 부분. 배사부의 정상을 이은 선을 배사축, 위아래로 겹쳐진 각 지층의 배사축을 이은 면을 배사축면이라 한다. 이 배사축면의 기울기나, 축면 좌우지층의 기울기 상태 등에 따라서 습곡의 형태를 분류한다. 배사의 반대를 향사(向斜)라고 한다. 대규모의 배사구조가 있으면 지형에 영향이 미쳐, 일반적으로 골짜기가 형성된다. 이것은 배사부에 장력이 작용하여 단열(斷裂)이나 단층을 수반하여 약선(弱線)이 되기 때문이다. 또 석유나 천연가스 등은 일반적으로 배사부에 집적하므로 탐사의 근거로도 중요하다. 이 배사설(背斜說)의 적용으로 비로소 석유·천연가스 광상의 과학적 탐사가 행해지게 되었고, 배사설이 석유·천연가스 광업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며 이 설을 주창한 캐나다의 T.S.헌트나 미국의 I.C.화이트 등의 공적은 매우 크다.

▣ 배산임수(背山臨水)

배산임수란 산을 뒤로하고 물목을 잡아 촌락이 입지한 것을 지칭한다. 우리 나라는 산지나 구릉지가 평지와 어울려 분포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자연 촌락의 대부분이 배산임수의 입지를 갖는다. 1930 년대의 조사에 의하면 50% 이상의 촌락이 배산임수의 입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었다.대개 북쪽으로 산을 지고 산의 남쪽 기슭에 마을이 자리잡는 데 일조와 방풍에 유리하고 물의 관리에도 편리하다. 또한 산으로부터 땔감과 임산물을, 들에서는 농산물을 얻을 수 있으며, 외침으로부터의 방어에도 유리하다. 이러한 입지는 우리 나라의 자연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촌락 입지이며, 풍수 지리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도시화와 교통의 발달이 촌락의 성쇠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참고 : 풍수지리

배타적 경제수역(排他的 經濟水域)

자국의 연안으로부터 200해리(370.4km)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국제해양법상의 개념. 지난 94년 12월에 발효돼 95년 12월 정기국회에서 비준된 유엔해양법협약은 연안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협약에서 인정하는 EEZ의 경제주권으로는 어업자원 및 해저광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 해수·해풍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 탐사권, 해양과학조사관할권, 해양환경 보호에 관한 관할권 등이 있다. 따라서 다른 나라 어선이 EEZ내에서 조업하려면 연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나포, 처벌된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독도를 포함하는 EEZ선포를 강행하게 된 것도 한국어선의 일본연해 불법 조업을 차단하고 자신들의 EEZ를 넓히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경제수역이 200해리까지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주고 있으나 사실상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거리가 400해리가 되는 곳이 없어 200해리 EEZ는 서로 중복될 수 밖에 없다.  1해리는 1,852m(18c대포 탄착 거리)이다. 12해리는 약 22km임.

 ▣ 배후 습지(背後濕地, backmarsh)

배후 습지는 범람원의 자연제방 뒤에 나타나며,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지형으로서 주로 점토와 같은 미립물질이 쌓여 배후 습지를 형성한다. 범람원은 배후 습지가 자연제방보다 훨신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우리 나라에서는 제방을 쌓아 홍수시의 침수를 막아 비옥한 농경지(논)로 이용하고 있다.

 ▣ 배후지(背後地:hinterland)

  도시나 항구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 도시나 항구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기능이 미치는 주변 지역을 말하며 후배지(後背地)라고도 하며, 도시나 항구를 뒷받침하는 범위를 가리킨다.  어느 나라의 사정이나, 국제 정세 등의 변화와 함께, 항구의 성쇠에 따라서, 배후지가 다른 항구의 배후지에 속하게 되거나, 활발하게 다른 배후지를 침식 탈취하는 예는 흔히 볼수 있다.  부산이 남한 지역 전체를 배후지로 하여 한국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 되고 있는 반면에 인천은 배후지가 좁고 한때 중국 대륙과 단절되어 있었으므로 도시 발달에 지장을 받아 부산보다도 항세(港稅)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도시 발달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배후지도 그만큼 활발해졌다.  즉 배후지란 도시나 항구의 생산품, 항구의 수입품이나 반입품을 소비하고 도시의 생산활동의 원료를 공급하며 항구의 수출품을 공급하는 지역을 가리키기 때문에 도시권이나 세력권 들이 동의어로도 사용된다.

 ▣ 뱅크(bank)

  대륙붕의 얕은 부분에 있는 작은 융기부로 주(洲)나 초(礁) 등에 비해서 약간 더 깊은 해저 지형으로 퇴(堆)·천퇴(賤堆)라고도 한다.  해양 중에 돌출하여 있기 때문에 뱅크 연변을 따라 상승류(上昇流)가 일어나고 심층의 풍부한 영양분이 표면 가까이 까지 올라오는 데다가 태양 광선도 비치므로 많은 어족이 모여 좋은 어장을 이룬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이나 해류가 회전하는 곳에 분포하면 더욱 좋은 어장을 이룬다.  꼭대기의 수심은 비교적 얕지만, 항행에는 지장이 없다.